우선 가리가네8단 은 일본근대바둑으로 들어오는 시기에
슈샤이명인과 명인자리를 다투던 가장큰 라이벌이었고,
결국에 슈샤이명인에게 패하고
명인의 호칭을 슈샤이에게 뺏기고, 9단승단도 못했던 당시 2인자 였습니다.
(그때는 승단자체가 엄청나게 힘든것이었습니다. 슈사이명인이 있는한 승단은 못한다고 봐야죠)
59년에서야 추천으로 9단으로 올라갔던 사람입니다.(단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점이었지요)
당시 가리가네는 '기정사' 라는 일본기원에 대립하는 단체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관서기원격)
기타니를 꺽고 일본기원 1인자가 된 오청원에게 가리가네가 도전장을 내밀지요
'오청원이라면 단의 차이를 떠나 호선으로 대국해도 괜찮다. 라며 십번기를 하는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오청원은 7단, 슈샤이은퇴후 일본기원은 8,9단진이 없었습니다.)
일본기원측에서는 상당히 고민합니다.
가리가네랑 10번기를 한다는건 일본기원 대 기정사 라는 걸로 대표 될수 있으니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게 됩니다.
가리가네는 이 10번기를 성립시키기 위해 기정사를 떠나서 새롭게 경운사 라는걸 결성해서
10번기는 성립합니다.
(솔직히 기정사나 경운사나 이름만 다르지, 기정사에 있던 기사들도 모두 경운사로 왔기때문에 별 의미 없지요)
가리가네가 나이가 있지만, 상당한 펀치력을 가진 힘바둑 스타일이라서, 우려가 되는 상황이지요.
후에 오청원의 평가도
'가리가네8단의 힘이 너무 쎄서 정면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워서, 제가 항상 돌을 죽여서 세를 쌓고, 가리가네8단이 침입해서 싸우는 형국이 되어가곤 했습니다.'
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신중하게 결정된 가리가네8단과의 치수고치기 승부는
41년 8월에 가리가네 흑번을 시작으로 출발했습니다.
첫판을 오청원이 백번으로 신승하고, 2국을 흑번으로 거의 완승
3국은 가리가네의 흑4집승 하게 됩니다.
4국은 오청원 흑 3집승
5국은 오청원이 백 불계승을 하게 됩니다.
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4승1패로 오청원이 앞서고
다음 6국은 오청원이 흑번이라서 승리확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가리가네8단이 치수고치기 당해서 하단자에게 선상선으로 두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겨버리게 됩니다.
결국 관계자들이 가리가네8단의 명예와 몸을 생각해서 5국을 끝으로 중단되었습니다.
(42년 5월 5국)
이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오청원은 중국인이라는 문제때문에
이래저래 다른 기사들의 목표가 되고, 바둑팬들은 누군가 나와서 오청원을 꺽게 해줬으면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오청원은 일본귀화를 했지만, 일본측에서는 솔직히 중국인으로 여기는듯 합니다.)
슈샤이명인과 명인자리를 다투던 가장큰 라이벌이었고,
결국에 슈샤이명인에게 패하고
명인의 호칭을 슈샤이에게 뺏기고, 9단승단도 못했던 당시 2인자 였습니다.
(그때는 승단자체가 엄청나게 힘든것이었습니다. 슈사이명인이 있는한 승단은 못한다고 봐야죠)
59년에서야 추천으로 9단으로 올라갔던 사람입니다.(단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점이었지요)
당시 가리가네는 '기정사' 라는 일본기원에 대립하는 단체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관서기원격)
기타니를 꺽고 일본기원 1인자가 된 오청원에게 가리가네가 도전장을 내밀지요
'오청원이라면 단의 차이를 떠나 호선으로 대국해도 괜찮다. 라며 십번기를 하는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오청원은 7단, 슈샤이은퇴후 일본기원은 8,9단진이 없었습니다.)
일본기원측에서는 상당히 고민합니다.
가리가네랑 10번기를 한다는건 일본기원 대 기정사 라는 걸로 대표 될수 있으니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게 됩니다.
가리가네는 이 10번기를 성립시키기 위해 기정사를 떠나서 새롭게 경운사 라는걸 결성해서
10번기는 성립합니다.
(솔직히 기정사나 경운사나 이름만 다르지, 기정사에 있던 기사들도 모두 경운사로 왔기때문에 별 의미 없지요)
가리가네가 나이가 있지만, 상당한 펀치력을 가진 힘바둑 스타일이라서, 우려가 되는 상황이지요.
후에 오청원의 평가도
'가리가네8단의 힘이 너무 쎄서 정면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워서, 제가 항상 돌을 죽여서 세를 쌓고, 가리가네8단이 침입해서 싸우는 형국이 되어가곤 했습니다.'
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신중하게 결정된 가리가네8단과의 치수고치기 승부는
41년 8월에 가리가네 흑번을 시작으로 출발했습니다.
첫판을 오청원이 백번으로 신승하고, 2국을 흑번으로 거의 완승
3국은 가리가네의 흑4집승 하게 됩니다.
4국은 오청원 흑 3집승
5국은 오청원이 백 불계승을 하게 됩니다.
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4승1패로 오청원이 앞서고
다음 6국은 오청원이 흑번이라서 승리확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가리가네8단이 치수고치기 당해서 하단자에게 선상선으로 두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겨버리게 됩니다.
결국 관계자들이 가리가네8단의 명예와 몸을 생각해서 5국을 끝으로 중단되었습니다.
(42년 5월 5국)
이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오청원은 중국인이라는 문제때문에
이래저래 다른 기사들의 목표가 되고, 바둑팬들은 누군가 나와서 오청원을 꺽게 해줬으면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오청원은 일본귀화를 했지만, 일본측에서는 솔직히 중국인으로 여기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