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기전에 오청원십번기에 나오는 후지사와는
흔히 알고 있는 후지사와 슈코 가 아닙니다.
후지사와 호사이 라는 슈코의 조카뻘 되는 사이 입니다.(호사이가 나이는 더 많습니다.)
슈코는 오청원과 십번기를 한적이 없습니다.
슈코는 이래저래 활약은 했지만, 일본 최강자는 되지 못했지요.
맨날 사카다,다카카와,이시다 등에 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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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는 오청원보다 5살 어리고, 일본기원의 신별 이었습니다.
당시 오청원은 8단, 후지사와는 6단이라서
치수고치기 십번기는 정선으로 진행되며, 도중에 후지사와가 7단으로 승단이 되었지만
정선으로 유지하기로 정하고 십번기를 하게 됩니다.
강한 기사일수록 흑번무적을 자랑하지요.
후지사와도 흑번무적을 자랑하는 기사였습니다.(슈샤큐류를 상당히 좋아하던 기사였음)
오청원 십번기를 보면 오청원은 흑번은 거의 이긴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흑번을 다 이기고 백번 2번만 이기면 치수가 고쳐지는 방식이지요.
아무튼 오청원은 무적흑번을 내세우면서 백번으로 치열하게 싸워이겨서 항상 치수고치기에 성공합니다.
후지사와는 오청원과 3번의 치수고치기를 합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사 이지요.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얼마나 철저하게 당했는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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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6단은 흑번에 무척이나 강했고, 곧 7단이 승단되는 기사임에도
정선치고 한다는 자체가 오청원에게 무척이나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1942년 12월 27일에 후지사와 1차 치수고치기 십번기가 시작했습니다.
1국은 후지사와의 흑번으로 판을 정말 잘 닦아서, 힘차게 따라온 오청원을 3집차로 물리칩니다.
2국에서는 오청원이 흑번을 뚥고 승리를 따 냈습니다. 백불계승
3국에서는 후지사와 완승 3집승
4국에서 후지사와의 초반 실수가 나오면서 패로 쫓아왔지만 백이 잘 지켜서 백4집승
당시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신문도 종이통제 때문에 석간은 폐지, 조간도 앞뒤 2페이지가 달랑일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보를 싩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요미우리는 나름 열심히 십번기를 주최했습니다.
4국이 종료는 후지사와는 7단으로 승단 했지만, 치수는 정선으로 쭈욱 두워졌습니다.
5국은 백 불계승. 초반 흑완착을 잘 이끌어내면서 백승
6국은 흑완승 또 3집승... 후지사와는 승리할때 계속 3집으로 승리하고 있습니다.
7국에서 다시 오청원 백불계승
이제까지 4승 3패로 근소한우위를 보인 오청원 입니다.
일반적인 예상은 후지사와가 선상선으로 치수를 고친다는게 평가였지요.(곧 선상선도 되는지라..)
그런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밀리면서, 두 기사에게 징용영장이 나옵니다.
(오청원은 일본귀화해서 일본인으로 등록이 된 상태입니다.)
오청원은 몸이 너무 허약해서 군대면제 받습니다.
후지사와는 몸 튼튼하고 젊었는데...무슨일인지 면제 받습니다. (일본기원 빽 쓴거 같습니다)
8국 부터 10국까지는 44년 5월에 8월까지 두어졌는데
일본의 패색이 너무 짙어서 그당시 상황이 매우 안좋아서
식량조달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바둑에 집중할수 없엇던 오청원이 3연패 흑불계승으로 3번다 집니다.
통산전적 4승 6패
정선치수라는 점도 있었지만, 십번기중에 유일하게 승율이 가장 나빴던 십번기 였습니다.
후지사와는 치수가 어떻든 승율이 좋았기 때문에 그뒤 승단이 매우 빨라지는듯 합니다.
이후 후지사와는 일본기원 최초의 9단이 됩니다.
이후 일본은 전쟁에 패하고, 오청원도 바둑둘 여유가 없어서 이리저리 방랑하며
요상한 종교에 빠져듭니다. (솔직히 사이비...)
흔히 알고 있는 후지사와 슈코 가 아닙니다.
후지사와 호사이 라는 슈코의 조카뻘 되는 사이 입니다.(호사이가 나이는 더 많습니다.)
슈코는 오청원과 십번기를 한적이 없습니다.
슈코는 이래저래 활약은 했지만, 일본 최강자는 되지 못했지요.
맨날 사카다,다카카와,이시다 등에 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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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는 오청원보다 5살 어리고, 일본기원의 신별 이었습니다.
당시 오청원은 8단, 후지사와는 6단이라서
치수고치기 십번기는 정선으로 진행되며, 도중에 후지사와가 7단으로 승단이 되었지만
정선으로 유지하기로 정하고 십번기를 하게 됩니다.
강한 기사일수록 흑번무적을 자랑하지요.
후지사와도 흑번무적을 자랑하는 기사였습니다.(슈샤큐류를 상당히 좋아하던 기사였음)
오청원 십번기를 보면 오청원은 흑번은 거의 이긴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흑번을 다 이기고 백번 2번만 이기면 치수가 고쳐지는 방식이지요.
아무튼 오청원은 무적흑번을 내세우면서 백번으로 치열하게 싸워이겨서 항상 치수고치기에 성공합니다.
후지사와는 오청원과 3번의 치수고치기를 합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사 이지요.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얼마나 철저하게 당했는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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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6단은 흑번에 무척이나 강했고, 곧 7단이 승단되는 기사임에도
정선치고 한다는 자체가 오청원에게 무척이나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1942년 12월 27일에 후지사와 1차 치수고치기 십번기가 시작했습니다.
1국은 후지사와의 흑번으로 판을 정말 잘 닦아서, 힘차게 따라온 오청원을 3집차로 물리칩니다.
2국에서는 오청원이 흑번을 뚥고 승리를 따 냈습니다. 백불계승
3국에서는 후지사와 완승 3집승
4국에서 후지사와의 초반 실수가 나오면서 패로 쫓아왔지만 백이 잘 지켜서 백4집승
당시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신문도 종이통제 때문에 석간은 폐지, 조간도 앞뒤 2페이지가 달랑일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보를 싩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요미우리는 나름 열심히 십번기를 주최했습니다.
4국이 종료는 후지사와는 7단으로 승단 했지만, 치수는 정선으로 쭈욱 두워졌습니다.
5국은 백 불계승. 초반 흑완착을 잘 이끌어내면서 백승
6국은 흑완승 또 3집승... 후지사와는 승리할때 계속 3집으로 승리하고 있습니다.
7국에서 다시 오청원 백불계승
이제까지 4승 3패로 근소한우위를 보인 오청원 입니다.
일반적인 예상은 후지사와가 선상선으로 치수를 고친다는게 평가였지요.(곧 선상선도 되는지라..)
그런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밀리면서, 두 기사에게 징용영장이 나옵니다.
(오청원은 일본귀화해서 일본인으로 등록이 된 상태입니다.)
오청원은 몸이 너무 허약해서 군대면제 받습니다.
후지사와는 몸 튼튼하고 젊었는데...무슨일인지 면제 받습니다. (일본기원 빽 쓴거 같습니다)
8국 부터 10국까지는 44년 5월에 8월까지 두어졌는데
일본의 패색이 너무 짙어서 그당시 상황이 매우 안좋아서
식량조달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바둑에 집중할수 없엇던 오청원이 3연패 흑불계승으로 3번다 집니다.
통산전적 4승 6패
정선치수라는 점도 있었지만, 십번기중에 유일하게 승율이 가장 나빴던 십번기 였습니다.
후지사와는 치수가 어떻든 승율이 좋았기 때문에 그뒤 승단이 매우 빨라지는듯 합니다.
이후 후지사와는 일본기원 최초의 9단이 됩니다.
이후 일본은 전쟁에 패하고, 오청원도 바둑둘 여유가 없어서 이리저리 방랑하며
요상한 종교에 빠져듭니다. (솔직히 사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