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오청원,조훈현 이 세고에 문하 라는건 다들 아시라고 생각합니다.
하시모토가 젤 큰형이고, 조훈현이 막내지요
아무튼 그중 하시모토는 오청원과 2번의 치수고치기를 합니다.
----------------------------------------------------------
전쟁이 끝나도 오청원은 여전히 종교에 빠져서 암것두 안하고
맨날 기도만 하고 교주만 따라 댕겼습니다.
근데.. 바둑밖에 모르던 사람이 돈이 어디겠습니까.
(사이비종교가 원하는건 솔직히...돈 아니겠습니까)
집도 다 팔고, 암것두 없이 종교만 따라 댕겼습니다.
일본기원 건물도 전쟁에 타서 없어지고, 전후사정은 바둑을 둘 여유조차 없던 시기 였지요
아무튼 교주의 명령으로 바둑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일본기원도 다시 일어셨고, 바둑부흥을 하기 위한 시발점도 필요한 시기인지라
일중 대결이란 모토를 숨기고, 당시 최고 타이틀자였던 하시모토를 내세우고
오청원을 불러옵니다. (둘다 8단.. 그때는 9단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당시 오청원은 바둑을 둘 생각은 별로 없었는듯 합니다만.. 교주가 시킵니다 ㅡㅡㅋ
(돈도 벌고, 종교선전 목적도 있었겠지요)
대국료는 당시 돈으로 1만엔...그당시로써는 매우 큰돈이죠.
대국료는 오청원손에 들어간거는 한푼도 없이 다 교주가 먹습니다. ㅡㅡㅋ
1국은 46년 8월에 시작했습니다. 교주는 전날부터 승리기원 기도를 했다는 군요
그러나 2년의 공백은 너무 커서 흑번임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려다니다면서
하시모토의 백불계승
2국하기전에 교주는 바둑을 이길 법력을 옮겨준다면서, 같은방에서 자게 하며, 오히려 오청원을 힘들게 만듭니다.
아무튼 백번으로 어렵게 바둑을 이끌어가다가, 후반 하시모토의 완착이 이따르면서
백 1집승
2국해설했던 세고에는 '하시모도는 아주 이상하다. 이런 바둑을 지다니 파문감이다' 라고 한탄할 정도 였답니다.
3국은 오청원의 감각이 돌아와서, 흑완승 흑불계승
3국이후 교주는 바둑에 관심을 잃고, 대국에 관여를 안합니다.물론 돈은 챙겨갔구요.
아무튼 오히려 이점이 십번기에 오청원에게 도움 됬겠지요.
당시 오청원은 열혈교도 로써 종교-대국장 만 오가는 모범 교도 였고
속인과 사귀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 때문에, 대국장에서도 잡담조차 안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사부랑 사형이 있는데도..좀 심하군요)
4국은 대각선 양 3.3 을 두는 특히한 포석을 들고, 난전끝에 백 8집승
5국에서는 하시모토의 몸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131수 만에 흑불계승
그뒤 6국은 하시모토의 건강상의 이유와 오청원의 종교적 문제로
반년후에 다시 두어 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4승1패로 오청원 유리
6국은 47년 7월에 두어지고, 하시모토의 흑2집승
7국은 오청원의 흑불계승
8국 하시모토의 고비판입니다만..오청원의 대마사활에 승부를 걸고 살게 되서 결국 백불계승 하게 됩니다.
결국 8국까지 6승2패로 치수가 선상선으로 고쳐지게 됩니다.
9국,10국은 선상선 치수 때문에 하시모토가 모두 흑을 잡게 됩니다.
(왜..흑흑백 순서일까..흑백흑 순서가 아니라... )
9국은 빅
10국은 흑 불게승 합니다.
최종 결과는 6승 2패 1빅으로 치수가 선상선으로 고쳐졌습니다.
p.s 47년에 세고에 선생이 일본기원에 오청원의 사표를 제출해서 오청원은 일본기원에서 제적 당합니다. 사표제출의 사유는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종교문제인것으로 사료 됩니다.
(오청원 스스로 제출한게 아니라, 세고에가 제출했습니다.)
그뒤 20년뒤에 자신이 일본기원에 제적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20년동안...왜 몰랐던거야 ㅡㅡㅋ)
오청원은 일반기전에는 참가를 안했었고, 요미우리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나 십번기만을 두게 됩니다.
오청원은 스스로 기전 참가를 하려고 한적이 매우 적었고,
일반기전 참가는 요미우리가 주최하는 대회정도만 나갔으며, 요미우리가 객원기사형식으로 대회 참가를 시킨 겁니다.
하시모토가 젤 큰형이고, 조훈현이 막내지요
아무튼 그중 하시모토는 오청원과 2번의 치수고치기를 합니다.
----------------------------------------------------------
전쟁이 끝나도 오청원은 여전히 종교에 빠져서 암것두 안하고
맨날 기도만 하고 교주만 따라 댕겼습니다.
근데.. 바둑밖에 모르던 사람이 돈이 어디겠습니까.
(사이비종교가 원하는건 솔직히...돈 아니겠습니까)
집도 다 팔고, 암것두 없이 종교만 따라 댕겼습니다.
일본기원 건물도 전쟁에 타서 없어지고, 전후사정은 바둑을 둘 여유조차 없던 시기 였지요
아무튼 교주의 명령으로 바둑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일본기원도 다시 일어셨고, 바둑부흥을 하기 위한 시발점도 필요한 시기인지라
일중 대결이란 모토를 숨기고, 당시 최고 타이틀자였던 하시모토를 내세우고
오청원을 불러옵니다. (둘다 8단.. 그때는 9단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당시 오청원은 바둑을 둘 생각은 별로 없었는듯 합니다만.. 교주가 시킵니다 ㅡㅡㅋ
(돈도 벌고, 종교선전 목적도 있었겠지요)
대국료는 당시 돈으로 1만엔...그당시로써는 매우 큰돈이죠.
대국료는 오청원손에 들어간거는 한푼도 없이 다 교주가 먹습니다. ㅡㅡㅋ
1국은 46년 8월에 시작했습니다. 교주는 전날부터 승리기원 기도를 했다는 군요
그러나 2년의 공백은 너무 커서 흑번임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려다니다면서
하시모토의 백불계승
2국하기전에 교주는 바둑을 이길 법력을 옮겨준다면서, 같은방에서 자게 하며, 오히려 오청원을 힘들게 만듭니다.
아무튼 백번으로 어렵게 바둑을 이끌어가다가, 후반 하시모토의 완착이 이따르면서
백 1집승
2국해설했던 세고에는 '하시모도는 아주 이상하다. 이런 바둑을 지다니 파문감이다' 라고 한탄할 정도 였답니다.
3국은 오청원의 감각이 돌아와서, 흑완승 흑불계승
3국이후 교주는 바둑에 관심을 잃고, 대국에 관여를 안합니다.물론 돈은 챙겨갔구요.
아무튼 오히려 이점이 십번기에 오청원에게 도움 됬겠지요.
당시 오청원은 열혈교도 로써 종교-대국장 만 오가는 모범 교도 였고
속인과 사귀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 때문에, 대국장에서도 잡담조차 안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사부랑 사형이 있는데도..좀 심하군요)
4국은 대각선 양 3.3 을 두는 특히한 포석을 들고, 난전끝에 백 8집승
5국에서는 하시모토의 몸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131수 만에 흑불계승
그뒤 6국은 하시모토의 건강상의 이유와 오청원의 종교적 문제로
반년후에 다시 두어 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4승1패로 오청원 유리
6국은 47년 7월에 두어지고, 하시모토의 흑2집승
7국은 오청원의 흑불계승
8국 하시모토의 고비판입니다만..오청원의 대마사활에 승부를 걸고 살게 되서 결국 백불계승 하게 됩니다.
결국 8국까지 6승2패로 치수가 선상선으로 고쳐지게 됩니다.
9국,10국은 선상선 치수 때문에 하시모토가 모두 흑을 잡게 됩니다.
(왜..흑흑백 순서일까..흑백흑 순서가 아니라... )
9국은 빅
10국은 흑 불게승 합니다.
최종 결과는 6승 2패 1빅으로 치수가 선상선으로 고쳐졌습니다.
p.s 47년에 세고에 선생이 일본기원에 오청원의 사표를 제출해서 오청원은 일본기원에서 제적 당합니다. 사표제출의 사유는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종교문제인것으로 사료 됩니다.
(오청원 스스로 제출한게 아니라, 세고에가 제출했습니다.)
그뒤 20년뒤에 자신이 일본기원에 제적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20년동안...왜 몰랐던거야 ㅡㅡㅋ)
오청원은 일반기전에는 참가를 안했었고, 요미우리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나 십번기만을 두게 됩니다.
오청원은 스스로 기전 참가를 하려고 한적이 매우 적었고,
일반기전 참가는 요미우리가 주최하는 대회정도만 나갔으며, 요미우리가 객원기사형식으로 대회 참가를 시킨 겁니다.